기록장
미트루트 챕터 1-7 본문
복싱 벨이 미친 듯이 울려대고 있다. 더크는 관중들이 자아내는 야유의 불협화음과 무대 중앙으로 던져지는 양동이들 사이에서 로즈가 뭐라고 말하는지 듣기 위해 한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는다. 꽤나 좆같은 상황이라, 더크는 관객석을 향해 엿을 날리고 가림막을 뛰어 넘어간다. 쇼가 끝날 때 즈음이면 늘 일어나는 관례적인 폭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경기장을 떠나는 것이 현명한 법이다.
마지막 로봇이 기절한 제이크의 몸을 들어 부드럽게 가슴에 품고는 천장을 뚫고 날아간다.
전화 건너편에서, 로즈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ROSE: "무슨 일인지", "무슨 상황인지"가 중요한 게 아냐, 내 대답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나 자신" 그 자체지.
ROSE: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철학적으로도 그래.
DIRK: 네가 철학적으로 뻗었다고?
ROSE: 응.
DIRK: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ROSE: 그게 뭘 안 의미하겠니, 더크.
DIRK: 내 유전적으로 타고난 멜로드라마적 성향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슬라임-자손 속에서 잘 살아있다는 점은 반갑네.
ROSE: 방해하지 말아 줘. 이건 중요한 안건이고, 관련된 사실들을 일방적으로 독백하는 것만으로도 내 에너지를 모두 쏟아야 할 정도야.
DIRK: 알았어. 네가 먼저 시작한 대화에 짧게, 가볍게 개입한 걸 용서해줘. 계속 말해봐.
ROSE: 고마워.
ROSE: 어쨌든, 문제는 내 ‘상태’야. 네겐 익숙한 류의 것이겠지.
ROSE: 어떻게 하면 네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 네가 네 특유의 고압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 거라는 게 명백하니까. 그리고 그건 지금의 내 체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
ROSE: 최근엔, 이마에 손목을 얹어서 내 병약함을 드러낼 힘도 간신히 나는 수준이야. 네 헛소리는 말 그대로 수천 파운드짜리 깃털 같은 거라 나를 아파트의 유리창 너머로 날려버릴 수도 있어.
DIRK: 듣기 불편한 이야기긴 하네. 하지만 네 병약함이 성대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한 것 같아 안심이야.
ROSE: 봐, 더크. 오늘 내가 가장 듣기 싫은게 바로 그런 헛소리야.
DIRK: 미안.
ROSE: 결론만 말할게.
ROSE: 나는 승천하고 있고, 이건 끔찍해.
로즈는 마치 친한 친구의 뒷담화를 하려는 사람처럼 몸을 소파에서 고쳐 앉는다. 여기서 ‘친한 친구’란: 그녀의 고통받는 정신을 말한다.
ROSE: 수년 동안 내 빛의 선견자 능력을 연마해온 결과, 나는 이제 저주와도 같은 무한에 가까운 예지력을 얻게 되었어. 이 이상적인 ‘캐논 이후의’ 세계에서 지내면서, 이곳의 나와 파멸한 시간선의 나를 가르는 장벽이 점점 닳아 없어졌지. 우리의 여정 중 버려지고 잊혀진 모든 파멸한 대체 자아들의 기억과 경험들 말이야.
ROSE: 내 궁극의 자아에 가까워질수록, 이 모든 지식이 스며드는 걸 막을 수가 없어. 운이 덜 좋았던 나의 자아들로부터 오는 끊임없는 환영과, 우리의 존재의 메타문학적 본질에 대한 점점 넓어지는 시각에 시달리고 있지.
ROSE: 하루하루가 지날 수록 난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 데 더 가까워지고 있어.
ROSE: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제한된 신체에 갇혀 있지. 내 유한한 시냅스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에는 한계가 있어.
ROSE: 내 의식을 의미있는 사건에 집중시키는 데만도 모든 에너지가 소진돼. 거기다 캐논에 관련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점점 잃고 있기까지 하지. 사실이나 중요한 것을 판별하는 건 더더욱 어렵고.
ROSE: 이 모든 게 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좆같이 병들게 하고 있어.
DIRK: 아. 그게 다야?
ROSE: ...
DIRK: 뭐, 완전 솔직히 말하자면,
DIRK: 나도야.
로즈는 잠시 동안 침묵했다. 더크는 그녀의 호흡이 얼마나 힘겨운지, 얼마나 얕은지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짧고, 유머 없는 웃음을 내뱉었다.
ROSE: 정말?
ROSE: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감이니?
DIRK: 당연히 아니지. 내 뜨거운 공감능력의 대기권 진입 온도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우주선은 아직도 발명되지 않았거든, 더 볼 것도 없어.
DIRK: 그건 공감해주는게 아니었어. 나의 불쌍하고, 거의 전지적인 관점에 시달리는 자손을 향한 동정어린 선언이야.
DIRK: 우린 같은 상태로 고통받고 있다고, 로즈.
로즈는 이 선언을 처리하기 위해 드물게 대화를 멈추고 잠시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ROSE: 같은 상태라고?
DIRK: 그래.
ROSE: 내게는 네가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 것처럼 들리진 않는걸.
DIRK: 음, 그렇지.
DIRK: 틀린 표현을 썼나 보네. 넌 고통받고 있어. 난 적응했고.
DIRK: 정말로 예전부터, 적응했지.
ROSE: 언제 이 얘길 할 생각이었어?
DIRK: 네가 준비됐을 때.
ROSE: 그럼 지금이 그 중요한 정보를 말할 준비가 됐다고 판단한 순간이란 뜻이니?
ROSE: 이 얘길 할 수 있었던 다른 순간들과 현재를 구분 짓는 건 뭔데?
ROSE: 내 상태의 영향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서 내가 드디어 모든 걸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때까지 기다린 거야?
ROSE: 짧게 말해서,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린 거니?
DIRK: 와우. 음, 그렇게 말하면, 내가 좀 재수 없게 들리는데.
DIRK: 하지만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야.
ROSE: 믿기지 않네.
DIRK: 봐, 이건 그렇게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DIRK: "이봐 모두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내 인식의 경계가 무너져서 이제 난 거의 모든 물체와 시공간에 대해 알고 있어."
DIRK: "게다가 이 과정이 내 몸을 갈가리 찢어 놓을 거 같지만, 사실 난 꽤 잘 감당하고 있어. 걱정해준건 고맙다."
DIRK: "어쨌든, 내 이해할 수 없는 뇌 상태에 대해 너희 모두한테 존나게 알려주고 싶었음. 빠이."
ROSE: 좋아. 네가 비밀스러운 인간이라는 건 별 새로운 소식도 아니지.
ROSE: 너한테 화난 건 아니야. 그냥...
ROSE: 너무 혼란스러워.
ROSE: 왜 너는 나처럼 이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 거니?
DIRK: 설명할 때가 올 거야.
DIRK: 이 정보를 숨기고 있던 내가 아무리 냉담하게 보일지라도, 사실은 너를 위해서였어. 이 통화로 널 지치게 만들고 싶진 않았거든.
DIRK: 말할 게 정말 많지만,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지.
DIRK: 지금은, 네 문제가 뭔지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너의 확장하는 의식에 손을 쓰지 않고도 이를 영구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고안해왔다는 것만 말할게.
ROSE: 그랬어?
ROSE: 그게 뭔데?
DIRK: 정말로 말해주고 싶지만, 할 일이 좀 있거든. 나중에 내 스튜디오에 들러서 직접 얘기하자.
DIRK: 지금은, 네가 좀 쉬어야 해.
ROSE: 사실, 갑자기 이상하게 활력이 생겼어. 너만 괜찮다면 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DIRK: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안 돼.
ROSE: 내가 안 좋은 타이밍에 전화했니?
DIRK: 그건 아냐, 하지만 곧 선거가 있고, 내가 정치 공작원으로서 해야 할 일은 인류의 운명에 절대적으로 중요할 거야.
ROSE: 알겠어. 뒤에서 다 계획이 있다는 거지?
DIRK: 계획은 항상 있지. 어디에나 있어.
DIRK: 그건 내 계획도 아니고, 네 계획도 아니야. 계획에는 주인이나 설계자가 없지만, 관리자는 있어.
DIRK: 그 계획들이 돌아가려면 누군가 기름칠을 해야 하고.
ROSE: 스스로를 현실 그 자체의 유일한 기계공으로 여기는 건 정말 큰 짐이겠구나.
DIRK: 저주 같은 거지.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해.
DIRK: 힘을 아껴둬. 컨디션이 괜찮아지면 내 스튜디오로 와.
DIRK: 그럼 이만.
더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는다. 그는 목을 꺾고 선글라스를 아래로 살짝 내린다. 그렇게 해야 지평선에서 찬란하게 섞이는 보라색과 주황색 석양의 강렬함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그녀가 한 말이 맞다고 더크는 생각한다. 외부생물학적 딸이 스스로를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영향력을 행사하는 예술가로 여긴다면, 더크는 자신을 공학자로 여긴다. 그의 손바닥 아래에선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져 있다. 모든 부품은 목적을, 자리를, 상호 결합적인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으며, 때문에 전체가 아니라면 무의미하다.
더크는 이 순간 유난히 날카로운 자기 성찰에 만족하며 뒤꿈치로 몸을 젖히더니 하늘로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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